샘물터| 감만동
현재 대우아파트 뒤쪽 보은정사 아래쪽은 산이 낮은데도 어디서 물이 솟아나는지 항상 주변 땅이 질펀하게 젖어있고 계곡에 물이 많이 흘렀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하여 감만동과 석포마을의 농사까지 지을 수 있었다. 정진석 씨는 이 골짜기에 항상 물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해가 나면 무지개가 자주 생겼다고 하여 ‘무지개골(무제골)’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홍곡(虹谷)’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김병화 씨는 물이끼가 끼면 붉그스럼하게 쇠물이 낀다 하여 ‘쇠물등’이라고 했다. 또 지도상에 이곳 맞은편 부산외국어대학교가 있는 산을 ‘샘물터산’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한다.
예부터 그곳은 ‘전선등’이라고 하였고 이곳에 조상들의 묘를 쓴 석포의 동래 정씨들도 족보에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그곳을 샘물터라고 한 적은 없으며 이 골짜기를 예인곡(禮仁谷)으로 불렀다고 한다.1) 이곳의 지명을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는 향후 논의 대상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