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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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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농요| 대연동

옛날의 대연동은 변두리 지역으로 거의 대부분의 토지가 농토였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토지가 거의 사라지고 주거지와 교육 중심의 고장으로 변모하였다. 이전에는 이 지역이 농사를 주로 하였으므로 분명히 농사를 지으며 공통체가 되어 부르는 노동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계시는 경로당을 방문하여 조사한 결과 용소와 못골마을에서 부르던 노동요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못골마을의 농군들의 경우는 노래하던 사람들이 이미 돌아가셨거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용소마을 노인들의 경우는 아직도 간혹 농요를 부르며 논다고 했다. 용소경로당을 찾아가니 할아버지 두 분과 할머니들이 계셨다. 1층 할아버지 경로당에 계시는 김온룡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농요 노랫말을 채록하였다.


그리고 2층 할머니 경로당에 올라갔다. 할머니들은 옛날에 철마, 양산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오신 분들도 계셨는데 모두 농사를 지으며 농요와 지신풀이를 하던 분들이었다. 과거에 불렀던 용소 농요를 듣기를 청하자 “이제 나이가 많아서 노래를 못해”하며 못내 거절하셨으나 김온룡 옹이 구술하신 농요 몇 구절을 말하자 정정남(1914년 생) 할머니가 노래를 시작하였다. 점차 한 소절씩 기억을 되찾은 할머니들의 농요 부르기가 시작되었고 양신석 회원의 장고 장단에 맞춰 아리랑 한곡조와 함께 춤사위가 너울대기 시작하면서 점점 하나된 마음이 되어갔다.


처음 느린 박자 모찌기 노래부터 한 소절 끝날 때마다 상호 호응하는 소리 [이후후후후...]와 메기고 받는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점점 박자는 빨라지고 있었다. 모찌기의 마지막 구절 [밀치라 닥치라 모두 잡아 훔치소]하는 대목에선 마지막 남은 모를 찔 때 많은 농군들이 모여 서로 부딪히면서 모를 빨리 찌기 위해 분주한 모습 이 눈에 선하였다.


모찌기 소리


서울이라 왕대밭에

금비둘기 알을 낳아

그 알 한 개 주웠으면

금년 과거 내 할구로


모찌기 할 때는 많은 시간이 안 걸리기 때문인 듯 노랫말이 많지 않았다. 농요의 노랫말도 다른 지역들의 노랫말과 유사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노래하는 청은 다른 지역과 많이 달라서 용소 지역 고유의 농요가 형성되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모를 다 찌고 난 후에는 바로 모심기에 들어가는데 그 때 지신풀이를 한다. 옛날에는 앞소리 하는 사람이 있었고 풍물도 잘 쳤는데 이제는 그 앞소리 하는 분이 돌아가시고 힘도 없어서 풍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경로당에는 50년이 넘은 풍물악기들이 남아 있었다. 농요를 할 때 박자를 맞추기 쉽도록 해금(앵금)을 연주하여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노동요인 농요를 부르면서 앵금을 사용했다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보기드문 독특한 경우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현재는 앵금을 켤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오전 모심기에 들어간 후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때

점심을 시켰다 순로야/ 시 어마시 어데오노 /

이 넘 저 넘 건너 너메/ 칡이 걸려 더디 오나


하는 대목에선 허기진 배를 움겨지고 참으로 밥이 오기를 기다리며 먼 산을 바라보듯 땀을 훔치듯 일을 하는 듯한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점심 후 해가 지고 나서까지 일하는 모습, 못줄 바꾸는 중간 중간에 허리를 펴고 한숨쉬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노랫말 속에는 세상인심과 남녀상열지사, 순박한 농민들의 삶이 배어 나오고 있었으며 박자가 점점 빨라지면서 해거름의 바쁜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모내기 소리는 오전에는 느린 박자로 불러지다가 점심을 먹은 후 노래에는 힘이 넘치며 오후 해거름에는 재촉하는 듯 빠른 박자로 노래를 불렀다.


김온룡 옹에 따르면 세 벌 논을 메고 나면 한 해 농사가 다 끝났다고 하여 동네의 모든 일꾼들이 모여서 한 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을 선정하면 그 일꾼의 주인 되는 지주는 소와 음식을 내었고 그 일꾼은 소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고 한다. 이때 풍물을 치면서 같이 어우러져 동네잔치를 벌였다는 것이다.


용소 경로당에서 채록한 용소 농요들은 아래에 모았다 그리고 제10편 부록에서 농사의 특성에 따라 구분되게 정리하여 기록하였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조상들의 농사 노랫말을 늦게나마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다음 쪽에 용소경로당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채록하여 정리한 용소 농요를 실었다.


용소농요


모찌기


한재야 한섬 모를 부어 잡나락이 절반일세

성 안에 성밖에 첩을 얻어 기생첩이 절반일세

한강에 모를 부어 모찌기가 난감한네

하늘에 목화숨가 목화따기 난감하다

이물끼 저물끼 헐어놓고 쥔네 양반 어데갔노

문어야 전복 손에 들고 첩의 방에 놀러갔다.

우후후후(노래중간에 매김하는 소리)


뒷소리


밀치라 닥치라 모두 잡아 훌치소 (모가 다 되어 갈 때 하는 소리)


모심기


*오전


이 논에다 모를 숨가 금실금실 영화로다

우리 부모 산소 등에 솔을 숨가 영화로다

사공아 배 돌려라 우리 동생 보러갈래

너의 동생 무슨 죄로 솔뫼섬에 귀양갔노


서울이라 왕대밭에 금비둘기 알을 낳아

그 알 한개 주웠으면 금년가게 내 할구로

질경단말 패금마는 이 못곳은 아니패네

백두산이 높다해도 올라서면 발밑이고

한강물이 깊다해도 배만타면 발밑이요

한강위에 물이없는 낭이나서 가지는 열두가지요

대천바다 한가운데 뿌리없는 남기나서 가지는 열두가지요

잎은 삼백육십인데 그가지에 꽃이피네

가지가지 영할레라 잎이 송잘레라

그가지에 꽃이 피어서 꽃마다 영화일레라


*점심전(12시쯤)


서울이야 남정자야 점심참이 더디 오네

미나리야 시금초는 맛본다고 더디온다

점심을 시켰다 순로야 어데마시 오시는고

이등 저등 건너등에 칡이 걸려 더디온다.

아가아가 며늘아가 점심해가 늦어간다

시부모남편네 밥담다가노주개닷돈 다부질렀다



해거름(빠른박자)


해가 지고 저믄 날에 웬 행상이 떠나가노

그행상이 본처죽어 이별행상 떠나간다

이태백이 본처잃고 유배행상 떠나가네

해다졌네 해다졌네 진주 덕산 해다 졌네

알금 삼삼 고운처녀 못다보고 해다 졌네

서마지기 논배미가 반달같이 남았구나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핸도래미 해다졌다 어부래기 동자간다

해다지고 저믄 날에 산골마다 연기난다.

우리님은 어디가고 연기날 줄 모르느냐



타작노래


에요 에요 에요 에요

에요 에요 에요 에요

꽃 나간다 꽃 나간다

이삼월 아니라도 꽃나간다

오헤야 넘어간다 요리쳐라 조리쳐라

내중우는 내가입고 네중우는 네가입고

오헤야 요리봐라 요리쳐라 조리쳐라



베틀노래(1)


베틀네야 어이 베틀네야

옥난방에 어이 베틀네야

베틀다리 네다리용 이내다리 두다리요

보재집 치는 소리 지질굼 지질굼

상금상금 쌍가락지 주석섞인 놋가락지

먼데 보니 처자레라 잦에 보니 달일레라

청도부사 오라버니 거짓말씸 말아시소

남풍이 건듯부니 풍지떠는 소리로다

명주야 어 잔줄바지 못다입고 황천가네

칠십된 부모두고 황천가는 날만할까?



베틀노래(2)


정절궁 도토마리 정절궁 뒤비눕네

그위에 앉은 임은 전 임금의 본댁이라

이애때는 두형제요 눌림대는호부래비

밤에 짜면 야광단이요 낮에 짜면 일광단이다.

일광단 야광단 다 짜서 서방임 치장이나 해보자

명주야 어 잔줄바지~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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