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1동 동제| 우암동
우암동에서도 제일 외진 곳에 동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었다. 옛날 소방 도로가 나기 전에는 당산 땅이 200평 정도가 있었고 솔밭으로 되어 있었는데, 피난민들이 소나무를 베고 집을 지어 버렸으며 현재는 소방 도로를 내면서 당산까지 뜯긴 상태이다. 보상금으로 집을 지을 때 원래보다 축소하여 짓고 기금을 조금 남겨 두어 당산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현재 우암동의 동제는 다른 지역에서 행하는 동제와 성격과 형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즉 다른 마을에서는 나이든 남자 제주가 주민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적 의식으로 마을 잔치처럼 행사를 치르는데 비하여 우암동 동제는 점을 치는 사람이나 무당에게 부탁하여 동제사를 지내고 있다. 동제를 잘 지내면 다행이고 못 지내면 패가망신한다는 이유로 아무도 맡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동네에 나쁜 일이 생기면 원망을 들어야 하므로 제주 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옛날에는 동제사를 정월 초이튿날 지내고 사흩날 아침에 경로당에 와서 음복을 했다. 현재는 종교적 문제와 주민과 젊은이들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동회에서 15년 동안 지원해 오던 동제 경비를 3년 전부터 지원하지 않고 있다. 또 우암동이 우암 1동, 우암 2동으로 분동되면서 우암2동에서는 우암1동에 당집이 있으니 그곳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며 경비 지원뿐만 아니라 행사 참여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일제시대 때의 억압도 이겨내었을 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의 일환과 미신 타파라는 미명하의 철거 시도에도 존재하며 이어져 내려오던 민족 고유의 마을 동제가 사라질 위기에 빠져 있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