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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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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2,3,4동 동제| 문현동

가.문현2동의 동제당

 

동제당을 관리하는 경로당 회장인 김두섭 씨에 의하면 당사 터는 개인 소유만이 아니라 100년 전부터 시유지였었다고 한다. 1845년 전후 웃농막 마을이 형성되면서 당산신을 모셨는데 일제 때 좌천동 해변의 매축을 위해 이곳 당산의 토석을 채취하자 당사는 부득이 문현2동 620번지로 옮겨졌으며, 문현 2동의 노인정의 사옥에 제단을 설치하고 매년 제의를 지내 왔었다. 그리고 이 지역에 1985년도에 집중호우로 인하여 산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산사태로 인하여 산 아래에 살던 마을을 덮쳐 엄청난 재산과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그 후 이 산사태가 발생한 자리에 제당을 지었는데 그 후로 아직까지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1) 


이 곳에 1994년 5월 현재의 당사를 짓게 되었다. 당사를 짓고 나서 경로당을 지었는데 동제사 때 쓰는 경비는 당산이 있던 집을 지어 달세를 받아 그것으로 쓴다고 한다. 현재의 경로당은 1994년도에 지었는데, 2층을 짓고 그 경로당 뒤편에 동제당을 지었으며 동제당에는 항상 밥 두 그릇을 떠놓는다. 


동제당은 팔작 청기와 지붕에 블록 벽으로 된 한 칸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 대지 12.4평에 약2.5평의 건물(앞면283㎝, 옆면 282㎝,높이 278㎝)로 알루미늄 샤시 여닫이문이 두 짝 달려 있고 건물의 중앙에 현판(가로73㎝, 세로21㎝, 두께3㎝)이 붙어 있다. 


서쪽으로 건물이 앉아 있으며 동제당 안에는 향나무로 된 위폐함 안에는 향나무로 된 위패함 안에는 “황령산주산신위(荒嶺山主山神位)” “황령산고당신위(荒嶺山姑堂神位)”라 쓰여진 위패가 들어 있으며, 뒷벽에는 황령산 전경의 그림(가로 230㎝, 세로147㎝)이 붙어 있다. 연1회의 동제를 지내며 이때 제관은 노인정의 노인 회장이 맡고 정월 열나흘 자정에 지낸다. 제사에 쓸 음식은 부녀회에 돈을 주어 마련하게 하는데 동제이므로 특별히 준비하는 것은 없다. 제의가 끝나면 음식은 노인정에서 부정 없는 분들이 음복한다. 



나. 문현3동의 통일동산 당산제 


문현 3동에서는 매년 음력 5월5일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민족 고유의 명절인 단오를 기념하기 위하여 산91번지 소재 통일 동산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통일 동산 당산제 및 단오 축제는 당산제에서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고 잊혀져 가는 단오 행사의 멋과 풍류를 대대로 전수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지역 문화 행사로 많은 주민과 유관 단체들이 참가하여 즐거운 한마당을 펼쳐 동민 화합의 장을 만들고 있다. 1997년 14화재 행사를 치렀다.2) 



1) 심상원 씨에 의하면 1985년의 문현동 산사태는 당시 산비탈에 아카시아 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뿌리가 땅속 깊이까지 내리지 못하여 산비탈의 지반이 약해져서 집중적인 호우로 인하여 산이 무너져 내리게 되어 엄청난 피해를 주었으며, 아직도 이곳 주민들에게 악몽과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2단의 옹벽으로 복구는 하였으나 여전히 취약 지구로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한다. 

2) 1995년 발행된 남구지에서 발췌하였다. 


다. 문현4동의 동제 


문현4동에서도 문현2동과 마찬가지로 동제를 지내 오고 있었다. 


당산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당나무가 있고 그 아래 샘이 있었는데, 나무 주위를 돌로 둘러쌓아 놓아 제사 때는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동제사는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 중 깨끗한 분이 연1회, 정월 14일에 제주가 되어 동제사를 모셨었다. 나중에는 오랫동안 3명의 할머니가 제사를 지내 오고 있다가, 그 뒤 다보암의 김차순(1920년 생) 할머니 한분이 당산을 모셔 왔었다. 그러나 그 할머니 역시 나이가 많아 20년 전부터 다보암에 계시는 스님이 주관하여 지내오고 있다. 이 다보암이라는 절은 당집 위 산 속에 있는데 절을 짓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시골 태생의 어느 은행에 다니는 사람이 아들을 얻었는데 초파일에 남편과 아들이 꿈에 본 자리를 찾으러 여기에 왔다. 한참을 올라가 보니 꿈에 현몽한 자리가 그곳에 절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절에 살고 있는 김차순 보살에 따르면 절을 지은 후 중생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개인이 사용하여 절 운영이 어려워져 팔고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즉 절의 주인이 유학을 가자 현재의 스님이 15년 전부터 지키게 되었고, 절을 다시 지어 관모봉 다보암이라고 했다. 다보암은 장자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스님이 고전을 찾아보니 이 산 모양이 관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절 이름을 관모봉 다보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의 인구는 이동이 심하여 고정적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동제사를 지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마을의 어른들과 동장, 새마을 금고 이사장 등에게 동제에 소요되는 경비를 부탁하여 개인이 부담하거나, 혹은 동회에서 20만원을 지원하여 준 돈으로 동제를 지내 왔으나 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시설 또는 전기, 수도가 없어 불편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옛날에는 동제를 올릴 때 제물로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렸으나 스님이 맡으면서부터 생선은 준비하지 않는다. 옛날에 당산나무 밑에 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샘을 10년 전에 메워 없애 버렸는데 그때 샘을 메우는 작업에 참여했던 장정들 중에 몇 사람은 얼마 못가서 죽었다고 한다. 


현재는 큰 길이 생기면서 베어졌으나 그 당시에 는 당산나무로 삼던 오동나무 두 그루(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가 있었는데 현재는 포구나무를 당산나무로 삼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중 한 그루를 없애려고 했으나 사람이 나무를 베려 할 때마다 기계가 고장 나서 오동나무를 자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문현4동 동제당에는 옛날에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할머니 당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할머니 당산나무를 대신하여 산신 할아버지 옷과 산신 할머니 옷을 당집 안에 마주보게 걸어 두고 있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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