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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용호동

오륙도 이미지

가. 오륙도의 유래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 2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0월 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 24호로 지정된 오륙도는 부산항을 오가는 배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호적없는 바다의 외로운 무인도 섬이었다. 이 무인도 섬 오륙도가 유인도섬이 된 것은 1927년 오륙도 끝에 있는 밭섬에 등대가 세워진 후 등대섬으로 부르면서 부터이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되고 나서 부산의 관문인 오륙도 앞으로 배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항구를 알리는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오륙도의 밭섬(일명 등대섬) 위에 등대를 세웠던 것이다. 

또한 오륙도는 당시 남구청장으로 있던 강판녕(1930년 생) 씨에 의해 국유지로서 정식으로 지번을 부여받아 토지대장에 등재하였다. 오륙도 임야(20,542㎡)를 측량하여 1978년 5월 30일 호적을 부여받으면서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2동 936번지에서 941번지까지의 지번1) 이 주어졌다. 

오륙도는 부산만 북안 승두말로부터 남남동 방향으로 가지런하게 뻗어있는 기암절벽 6개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용호동 앞바다의 거센 물결속에 솟아있는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차례로 방패섬(936번지, 2,166㎥), 솔섬(937번지, 5,505㎥), 수리섬(938번지, 5,313㎥), 송곳섬(939번지, 2,073㎥), 굴섬(940번지, 9,716㎥), 등대섬(941번지, 3,416㎥)으로 나뉘어진다.2) 

오륙도란 이름은 우삭도가 밀물일 때는 두 섬으로 나누어지고 썰물일 때는 하나로 되어 방패섬과 솔섬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동래부지』에서는 절영도 동쪽에 있는 오륙도가 보는 위치에 따라 동편에서 보면 6봉으로, 서편에서 보면 5봉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륙도’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오륙도 이름의 유래는 승두말 반도의 우삭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삭도는 1억 년 전 백악기 중생대에 퇴적암으로 형성된 섬으로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파식대 지층이었다. 이것이 오랜 시대를 거치면서 해식아치에 의해 2개에서 4개로 분리된 파식대이다. 폭이 1m의 해식동굴이 수심 1m 밑에 연결된 해식대가 썰물일 때는 우삭도라 불리우는 하나의 섬으로 보이나, 밀물일 때는 방패섬과 솔섬이란 두 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보인다. 즉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한 썰물 밀물에 따라 대여섯 개의 섬으로 보인다는 데서 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삭도는 오륙도 명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지질적 구성 성분으로 보아 옛날에는 육지에 이어져 있었음이 증명되는 섬이기도 하다. 


  오륙도 섬별로 붙여진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면 용호동에서 제일 가까운 섬으로 세찬 바람과 파도를 막아준다는 방패섬, 섬의 꼭대기에 소나무가 자생하는 솔섬, 갈매기를 노려 독수리들이 모여들었다는 수리섬 또는 비석섬3)에는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동쪽에서 섬을 바라보면 기도하는 부처와 같은 부처상이 보인다고 한다. 뾰족하게 생긴 섬으로 크기는 작으나 제일 높은 송곳섬, 가장 큰 섬으로 커다란 굴속의 천정에서 방울방울 흐르는 물은 능히 한 사람 몫의 음료수로 충분한 굴이 있는 굴섬, 마지막으로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졌으며 유인도인 등대섬은 평탄한 밭처럼 생겼다하여 밭섬이라고 하였는데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 하는데 섬 가운데 이 곳을 제외한 나머지 섬은 모두 무인도이다. 오륙도 유람선 대표 임형남(1940년 생)씨와 오륙도 유람선 선장에 의하면 굴섬에 있는 굴에 지성을 드리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특히 음력 정월 대보름 때가 되면 집중적으로 온다고 한다. 부산 사람들이 갓바위로 지성을 드리기 위해 가는 것처럼 옛날부터 대구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굴섬에 들어가서 지성을 올리며 때로는 방생도 한다. 그래서 이 굴은 일년 내내 촛불이 켜져 있다고 한다. 굴 밖에서 보면 반짝이는 촛불이 마치 신비스럽고 영롱하게 보였다. 지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은 굴 안이 엄마의 뱃속 같이 보여서라고 한다. 즉 굴의 모양이 마치 여자의 생식기처럼 생겼다고 한다. 굴 입구가 여자의 질구 모양이며, 그 위에는 물이 나오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오줌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며, 맨 위에는 숨구멍처럼 보이는 구멍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굴 안에는 항상 마르지 않고 촉촉한 물기가 있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엄마의 뱃속처럼 느껴져서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드린다고 한다. 민속회원들이 조사할 때에도 어떤 노부부가 촛불이 켜져 있는 굴 안으로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보았고 또 다른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들고 굴 쪽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굴 밖에서 보면 촛불이 보였는데 굴 안에는 항상 촛불이 켜져 있다고 한다. 오륙도 근처는 조류가 매우 빨라 뱃길로서는 위험한 곳이었기 때문에 옛날 이곳을 지나는 선인들은 항해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하여 공양미를 던져 해신을 위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용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1) 1978년 지적공부 등록사항에 의한 오륙도 면적은 방패섬(1,755㎥), 솔섬(5,223㎥), 수리섬 (3,362㎥), 송곳섬(1,755㎥), 굴섬(6,105㎥), 등대섬(2,343㎥)로 측정되었다 

2) 제2차로 오륙도 면적을 재실시하여 1998. 5. 26일자로 지적공부 등록사항(면적) 정정함 

3) 수리섬을 일명 비석섬이라 부르는 것은 동래 부지에 임진왜란 시대에 당나라 장수 만세덕의 비가 있었다 하여 비석섬이라 하기도 하는데 태풍으로 비석이 부서져 없어졌으며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동래부지가 기록된 사실로 볼 때 그때는 명나라 때이므로 명나라 장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부산시사편찬총람) 


나. 오륙도의 특징 

오륙도는 부산만 북안 승두말로부터 남남동 방향으로 가지런하게 뻗어있는 해식이암으로 기암 절벽의 6개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용호동 앞바다의 거센 물결 속에 솟아있는 이 섬들의 면적은 28.189㎡이다.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나뉘어 진다. 오륙도는 거의 직각에 가까운 해식애와 소규모 파식대로 구성된 섬으로 전형적인 암석해안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편 해식애에는 고도를 달리하는 4단위 소규모의 파식대가 발달하고 곳에 따라 크기가 다른 해식동이 분포한다. 이러한 사실은 오륙도가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세월동안 파도의 침식을 받아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륙도 개개의 섬 별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방패섬과 솔섬으로 구성된 우삭도를 살펴보면 해발고도 32m의 역력(아원력)으로 두께 10cm정도의 녹회색 세립사암층이 협재하고 있다. 우삭도의 파식지형은 폭 98cm, 높이 9m의 해식동에 의해 솔섬(해송)과 방패섬으로 분리된 두 개의 해식이암은 현재의 해식영력에 의해 형성된 현재 지형만이 아니고, 최결간방기와 그 후 현재의 해면안정기 사이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해면안정기에 생성된 화석 지형과 현재 지형이 동시에 존재하는 파식지형이다. 

  둘째 섬인 수리섬(비석섬)은 해발고도 33m의 역암층과 조립의 흑색 내지 흑회색의 사암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조립질 사암층에는 10~20m의 두께를 가진 녹회색 세립사암층이 협재하기도 하고, 곳에 따라 평균직경 5~10cm의 녹회색 원력이 층진되어 있다. 셋째 섬인 송곳섬은 해발고도 37m의 역암층과 흑색 조립질 사이의 호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넷째 섬인 굴섬은 가장 높은 섬으로 해발 고도 68m로 송곳섬과 거의 같은 지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께 10cm 전후의 녹회색 조립사암층(화산회성 퇴적물)이 협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발이 잘 미치지 못하는 곳에는 가마우지의 배설물인 dung 4) 의 회색물질이 암벽을 덮고 있다.

  가마우지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바다새이다. 이 가운데 황제가마우지는 남극반도와 아남극권에서 발견되며, 세종기지 주변에서는 해안가에서 가끔 관찰된다고 한다. 마지막 섬인 밭섬(등대섬)은 해발고도 28m의 등대가 있는 유인도 섬으로 수리섬과 거의 같은 지질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외해에 면한 곳으로는 녹회색 세립사로 이루어진 굵은 자갈이 산재하는 조립 사암층 분포가 뚜렷하며 등대섬의 정상은 융기 파식대이다. 


4) dung의 원래 뜻은 부화호의 화석으로 구아노라는 인산비료이며 남미 페루 지방에 산재하는 화석으로 변한 암석이다. 


다. 오륙도의 자연생태 환경 

오륙도 섬에도 생명력을 가진 동, 식물들이 있다. 대기오염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지표 식물로부터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바닷물 속에서 오륙도 섬들과 함께 노니는 수많은 바다 고기들이 있어서 결코 외롭지만은 않은 오륙도 섬이다.

먼저 오륙도가 멀리서 보면 제일 위쪽이 검게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생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수직적으로 6m정도의 조간대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 조간대 위에 검은 색깔을 띠면서 살고 있는 남조류들이 바위 표면에 깔려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섬들이 검게 보이는 것이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좁살고동(일명 총알고동)들이 바위에 붙어 있으며 중간부에는 구멍 뚫린 조무래기 따개비들이 40cm정도의 띠를 형성하면서 바위에 붙어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 움직이지 않아서 죽은 것 같으나 살아있는 검은손 따개비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큰 따개비들은 한 번 붙으면 그 자리에서 일생을 살다가는 생물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좋은 장소에 붙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 되는 생물인데 해양의 오염으로 점차 이들의 모습이 줄어들고 있다. 

  오륙도 섬에는 바람과 염분에 강한 식물 30여 종이 살고 있다. 공기가 깨끗하여야만 사는 지의류가 있는데 이 식물은 대기가 깨끗하고 산성비가 적은 지역에 사는 대기지표 식물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오륙도 섬은 천연의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산 앞바다 해역은 낙동강과 쓰시마 난류와 북한강 한류가 영향을 미치는 해역이다. 전국에서 잡히는 어류 중에서 60% 정도가 부산에서 잡히는 어류로서 460여종이 된다. 이 해양생물의 분포는 바로 바다 속에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과 동물성 플랑크톤이 좌우된다. 즉 플랑크톤은 바다 생물의 고기 먹이로서 그 종류와 양이 곧 그 해역의 잠재 어류 생산량을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해당한다. 이 플랑크톤은 그 해역의 수온, 염분, 용존 산소량에 영향을 받는다. 오륙도 섬의 수온은 18°~22°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다량의 플랑크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가을에 플랑크톤의 양이 많으므로 작은 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것은 플랑크톤 중에서 항구와 지수지역으로부터 발생하는 외향성 플랑크톤이 발생하는 것으로 볼 때 오륙도 앞바다에도 해양 오염의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현상은 곧 어류의 생산량 감소와 직결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산의 자랑이며 상징인 천연의 조각품 오륙도가 있는 앞바다가 생활오폐수로 서서히 황폐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현실적인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그리고 솔섬과 수리섬(비석섬) 사이 해역에는 초당 3~4m인 강한 조류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해역은 교역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 시대에는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을 하기 위해 사용한 항로이며, 현재에도 울산으로 가는 작은 배들이 이 해역을 통과하여 항정을 좁혀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륙도를 왕래하는 유람선도 이 해역을 돌면서 관광객들에게 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오륙도 주변을 날아다니며 한층 섬의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더하여 주는 조류들이 있다. 

제일 먼저 굴섬의 암벽에 아름다운 미술 그림으로 장식하도록 만들어 준 가마우지가5) 있다. 크기는 갈매기의 2배 정도 되며 새까맣게 보이는 겨울새로서 바다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이 가마우지의 하얀 배설물들이 암벽에서 바람과 파도에 의하여 굳어져 장관을 연출하면서 오륙도의 멋을 한껏 더하게 하고 있다. 사람이 갈 수 없는 절벽에 가마우지의 배설물인 dung의 회색물질이 암벽을 덮고 있다. 가마우지의 특징을 살펴보면 몸 길이는 84cm, 온 몸이 검은색, 부리는 흑갈색이며 구부러진 모양, 다리는 검은 색으로 4개의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다. 가마우지의 서식지는 단독 혹은 무리 생활을 하고, 강 하구나 바닷가에 살며 둥지는 암초나 바위 절벽의 오목한 부분에 지어서 그 속에 알을 낳는데 한번에 4~5개를 낳는다. 새의 먹이는 바다 생선을 잡아먹으며 남해안, 동해안, 무인도, 제주도 성산포 부근, 부산 낙동강 하구 등에 분포하고 있다. 

  그 외에도 괭이 갈매기의 휴식처이며, 바다 쥐방울 새가 번식하고 있다. 붉은 빰매새, 노랑 할미새, 빨강 할미새 등 12~13종의 새들이 먼 바다를 날아가다 잠깐 쉬어가고 있기도 한다. 5) 가마우지는 겨울철 새로서 영문명은 Temminck_s Cormorant이고 학명은 Phalacrocorax filamentosus TEMMINCK % SCHLEGEL이다. 라.가마우지 이야기6) 신선이 산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중국의 계림 지방, 그곳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가마우지 새를 이용한 낚시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가마우지는 검은 잿빛에 날지 못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날개를 가진 새로, 길고 끝이 구부러진 주둥이와 긴 목으로 물고기를 재빠르게 낚아채고 큰 물고기 쉽게 삼킨다. 가마우지 낚시란 가마우지의 목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어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한 다음 그것을 꺼내는 낚시 방법을 말한다. 


  다음은 수백 년 이어온 계림 사람들과 가마우지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어부는 이른 새벽 가마우지를 태우고 강으로 나갔다. 강 한가운데에 이르러 가마우지의 목을 묶자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린 가마우지는 능숙한 솜씨로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이렇게 물고기를 몇 마리 잡은 뒤 어부는 가마우지의 목을 풀어 주어 가마우지가 마음껏 물고기를 먹게 했다. 해질녘이면 어부는 가마우지와 함께 붉은 노을 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너무 늙은 가마우지는 더 이상 낚시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어부는 손을 가마우지의 목에 넣어 물고기를 삼키게 해주었다. 가마우지가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어부는 날씨 좋은 날, 가마우지를 안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그리고 돗자리를 펴고, 조그만 상에 잘 익은 술 한 병을 올려 놓고는 가마우지와 마주 앉았다. 한참 동안 가마우지를 쳐다보는 어부의 눈에는 은혜와 감사의 정이 가득했다. 이윽고 어부는 정성스럽게 술을 따라 가마우지의 입에 부어 넣어 주었다. 늙고 힘없는 가마우지는 정성스러운 그 술에 깊이 취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긴 목을 땅에 뉘였다. 평생을 동고동락해 온 가마우지의 몸을 쓰다듬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쏟는 어부의 머리도 어느새 하얗게 세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오륙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물질을 하는 바다 해녀들이다. 깊은 바닷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채취한 각종 싱싱한 해산물들을 선착장에 펼쳐놓고 오륙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맛과 정취를 느끼게 하고 있다. 


6) 가마우지 이야기는 http://dreamwiz.com/pianowor/reading3.htm 에서 인용 


마. 오륙도의 형성 과정 

오륙도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오륙도는 12만년 전까지는 육지에 이어진 하나의 소반도였다. 그런데 부산만에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유구한 세월동안 거센 파도의 강한 침식작용으로 조그만 반도 곳곳에 해식동굴이 형성되고 이 해식동굴이 점차 커지면서 해식아치가 되었고, 육지에서 섬으로 분리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육지인 승두말과 인접한 방패섬과 솔섬은 그 지질의 구성이 동일하다. 즉,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만들어진 퇴적암으로 지층이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옛날에는 이어져 있었던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삭도의 형성과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수심 1m에 있는 해식대 위에 폭 98cm, 높이 9m의 해식동에 의해서 솔섬과 방패섬으로 분리된 2개의 해식이암이다. 즉 우삭도의 수직형 해식애가 절리면을 따라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수직적 파식작용으로 해식동이 형성되고 이것이 해식이암으로 분리되었다. 한편으로는 우삭도의 선단부는 암석의 경연에 따른 차별침식이 가해져 역암의 층리면을 따라 수평적 파식작용이 동시에 작용하여 수평적으로 분리되면서 고도를 달리하는 4단의 비교적 넓은 파식대가 형성 되었는데, 이 파식대들은 대부분이 융기 파식대이다.

따라서 오륙도는 파식대 형성 후 최종 간빙기와 해퇴의 일시적 정체기 사이에 각각 3번의 간혈적인 융기운동으로 인한 지반상승기와 해면안정기 사이에 생성된 화석지형과 해성지형이 동시에 존재하는 파식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삭도를 제외한 4개의 섬들도 수직적, 수평적 파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미지형이 지반상승운동인 융기운동으로 형성된 3단의 융기파식대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결국 현재의 오륙도는 12만년전에는 반도였던 것이 오랜 세월동안 지질 형성 시대를 거치면서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수직적 해식동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해식이암으로 분리되었으며, 여기에 수평적 파식대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간헐적인 융기운동으로 지반이 상승하여 4단의 계단이 있는 천연의 자연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부산만에 조각작품으로 자태를 뽐내며 부산의 자랑이자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오륙도 지질형성과정을 단계별로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초기에 육지인 승두말에서 남남동으로 뻗은 하나의 소반도였고, 그 시기는 12만 년전인 최종 간빙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때 해수면의 안정으로 말미암아, 곳에 따라서 절리에 의해 지배된 수직적 파식작용과, 소반도의 선단을 비롯한 주위에 수평적 파식작용이 진행되어 소규모의 해식동과 파식대가 형성된 것이다 

② 수직적 파식작용의 결과, 해식동은 확대되고 이로 말미암아 승두말에서 남남 동으로 뻗은 소반도는 처음으로 몇 개의 해식이암으로 분리, 현대의 오륙도 해체로 등장한 것이다.

③ 수직적 파식지형이 더욱 진행되어 그 결과 오륙도의 해체는 4개의 해식이암으로 분리되고, 동시에 이들 해식이암의 주위에는 수평적 파식작용의 결과 비교적 넓은 파식대가 형성되었다. 

④ 수직적, 수평적 파식작용의 진전으로 오륙도는 현재의 지형과 거의 유사한 5개의 해식이암으로 분리되고, 규모와 형태가 다양한 해식애와 파식대, 그리고 용형 및 용식요지와 같은 용식미지형과 파식구와 같이 파식미지형들로 조각된 것으로 보인다. 

⑤ 최종간빙기와 해의 일시적 정체기, 그리고 이들 두 시기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지반의 상승으로 이들 해식이암은 융기하였다. 

⑥ 그 후, 오륙도는 현성파식지형이 형성되기까지 ②~④와 같은 지형 형성과정을 반복하였으며 현재의 오륙도는 이와 같이 해식이암의 지형형성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총화이다. 


바. 오륙도의 지질과 지형변화 

오륙도는 광안리 단구에 속하며 부산만 일대의 해안이 발달하는 해성 단구 층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단구면에는 적색도(10R5/6~5/6)가 생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곳에 따라서는 적색 풍화각이 관찰된다. 모식지인 광안리 일대에는 산록 완사면의 선단을 제단하여 형성된 고도 35m, 20m, 9m의 3단의 해성 단구가 분포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해성면이 광안리 단구로서, 단구면은 비교적 두터운 퇴적물로 구성되어 있다. 퇴적물은 직경 3~5cm의 원역 및 편평역으로 구성된 해안역층으로서, 심한 풍화작용을 받아 적색을 띠고 있으며, 자갈은 조사용 삽으로도 쉽게 부서질 정도로 풍화가 심하다. 


(1). 오륙도의 지질 

오륙도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신라충군에 속하는 퇴적암으로 대부분은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곳에 따라 역암층에 10~15cm의 두께를 가진 조립 내지 세림질의 사암층이 협재한다. 특히 육지인 승두말과 그 앞의 우삭도는 같은 역암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역암을 이루는 자갈은 5~10cm의 원력 내지는 아원력이며, 이들 역암층에는 두께 10cm 정도의 녹화색 세립사암층이 협재한다. 이들 퇴적암은 오륙도에 인접하는 육지인 승두말의 암석과 그 성질 및 형성연대를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오륙도가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지금과 같이 5개의 해식이암으로 분리되기 전 까지는 승두말에서 부산만으로 뻗어 나온 하나의 작은 반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오륙도의 지형변화 

(가) 수직적 파식작용에 의한 형성 

오륙도 대부분에 수직형의 해식애가 발달하고 파식대에는 폭에 비해서 깊이가 상대적으로 큰 파식구가 분포한다. 해식동과 파식구의 주향을 측정해보니, 절리의 주향과 일치하여 특히 수직형의 해식애가 고각도의 절리 경사에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오륙도는 일차적으로 수직에 가까운 절리면을 따라 파식이 차별적으로 작용하여 해식동이 형성되고 그 결과 해식이암으로 분리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 수평적 파식작용에 의한 형성 

오륙도 특히 우삭도에 현해면 부근에서 파식대가 발달하고 있으며, 파식대와 해식애의 천이점에는 소규모의 낫치가 발달하고 있어, 수평적 파식작용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파식대와 낫치는 주로 역암층에 협재하는 녹회색 세립질 사암층에 발달하며, 파식대상에 곳곳에 세립사암의 잔존물이 남아있고, 파식의 저항에 강한 역암으로 된 램파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수평적 파식작용이 암석의 경연에 좌우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 간헐적인 지반융기운동에 의한 형성 

오륙도는 고도를 달리하는 파식대가 발달하고 있어, 수직적 수평적 지형 변화가 진행되는과정에서 최소한 3회의 간헐적인 지반상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오륙도의 파식지형은 현재의 해식영력에 의해 형성된 현재 지형만이 아니고, 최종간빙기와 그 후 현재의 해면안정기 사이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2회의 해면안정기에 생성된 화성지형(융기파식대)과 현성지형이 동시에 존재하는 파식지형임을 알 수 있다. 


사. 오륙도의 시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제영이 끊이지 않았던 이 곳 오륙도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며, 낚시꾼들의 낚시터로 애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륙도를 찾고자 하는 관광객을 위하여 태종대, 해운대 등의 해안에서는 유람선의 선착장을 마련하여 관광객들을 태우고 오륙도를 순회하고 있으며 오륙도 선착장에서 등대섬, 굴섬, 오륙도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낚시꾼들을 태워주는 유람선을 운행하고 있다. 오륙도는 한국의 관문이며 부산의 상징으로 부산시의 수문장으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가장 큰 국제항구인 부산항을 드나드는 각종 선박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부산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륙도는 꿋꿋한 부산시민의 기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의 역할도 다하고 있는 곳이며 이 지방 시인의 애송의 섬이기도 하다.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에 의하면 오륙도의 세 번째 봉우리에 당나라 장수 만세덕의 비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오늘날 그 비는 찾아 볼 수 없다. 아래에 오륙도의 아름다운 자태와 풍경을 노래한 시를 소개한다. 


五 六 島. 이은상. 


五六島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五六島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단데. 

오늘은 비 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오륙도를·이해하기·위한·몇가지·지구과학·용어정리 

침식작용 

엄밀히 따지면 하천이나 빙하와같이 선모양으로 토지를 깍는 작용을 말한다. 면모양으로 토지를 깍는 삭박(削剝)과 구별할수있다. 침식은 그매질에 따라 우식, 하식, 해식, 빙식, 풍식, 용식 작용으로 나눌 수 있다. 


침식지형 

조산운동에 따라서 생기는 구조지형이나,최적,작용에 의해서 생기는 퇴적지형과 대칭되는 말이다. 산등성이나 산봉우리 같이 침식에서 남게된 잔존지형과 침식으로 삭박 당하여 생긴 하곡,비하곡,빙식,해식,풍식,용식등의 지형이 있다. 


퇴적지형 

침식지형과 대립되는 말이다. 


이암(mudstone, 泥岩) 

일반적으로 SILT(미세모래)와 점토를 주성분으로 하는 불규칙한 혼합물로 물을 함유하여 연약한 것을 진흙이라 하는데, 이것이 굳어져 생긴 암석을 가리킨다. 구성물질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실트가 점토보다 많으면 실트암, 점토가 실트보다 많으면 점토암이라고 한다. 


실트(SILT) 

미사(微砂)라고 한다. 모래,점토와 함께 토양을 조성한다. 또 점토와 함께 이암의 주성분으로,실트가 점토보다 많으면 실트암, 점토가 실트보다 많으면 점토암이라고 한다. 크기는 모래와 점토의 중간인데 학문분야와 학파에 따라 그 크기의 한계가 약간씩다르다. 

- 해식이암 :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만들어진 실트와 점토가 주성분인 암석 

- 파 식 대 : 파도의 침식에 의해 깍여 만들어진 수직상의 평탄한 지형

- 해 식 애 :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수면위의 절벽지형 

- 해식지대 : 만조때는 수면아래로 수몰하나 간조때에는 해면 가까이 솟아 오른다. 이 해식대지 높은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한층 높은 평탄면과 보통의 파도에 의하여 형성된 낮은 평탄면의 2단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해식지대는 파도의 침식면이기 때문에 사력의 퇴적은 거의 볼수 없다. 해식대지가 융기할 경우에는 융기해 식대지 또는 해안단구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사암(sandstone,砂岩) 

일반적으로 석영, 장석, 운모, 각섬석 등의 암석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입자는 풍화되고 운반되는 마멸, 도태되어 여러 가지 형태나 입경(粒俓)을 가지게된다. 그 입도에 따라 극조립, 조립, 중립, 세립, 극세립으로 나뉜다. 

조립질(coarse-grained,粗粒質) 

magma가 냉각하면서 화성암이 생성되는데, 냉각속도가 느리게 진행되면 암석을 이루는 광물입자의 크기가 큰 결정질 형태와 조밀하게 모인 조직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화성암의 조립질 조직이라함. 


아. 오륙도의 유람선 관광 안내 

항구 도시 부산의 상징이자 얼굴인 오륙도는 화산작용과 오랜 지질시대를 거쳐 형성된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섬이다. 

전국에서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과 낚시꾼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아름다운 오륙도를 멀리서 보기도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서 가까이서 보거나 섬에 내리기를 원한다. 오륙도 섬을 배를 타고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은 용호농장 오륙도 선착장과 해운대 미포 선착장을 이용할 수 있다. 


먼저 용호 농장의 오륙도 선착장에는 오래 전부터 목선으로 고기를 잡으려고 오는 강태공들과 자연산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물질하러 가는 해녀들을 섬에 내려주었다. 또 관광객을 태우고 오륙도 섬 주변을 돌면서 섬의 아름다움과 바다의 정취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하여 왔었다. 그러다가 1994년부터 목선이 아닌 철선으로 만든 유람선 두 척으로 오륙도 섬과 방파제를 왕복하면서 낚시꾼들과 관광객들을 태워주고 있다. 


오륙도 유람선은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여름에는 아침 6시~저녁7시, 겨울에는 아침 6시50분~오후 5시 사이에 유람선을 수시로 운행하면서 섬과 오륙도 방파제에 손님을 내려주고 다시 태워온다. 다음으로 해운대와 오륙도 간에도 관광유람선이 다니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바다를 끼고 있는 해운대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수려한 사빈 해안과 배후의 송림. 그리고 동백나무로 유명한 유계도인 동백섬 등이 조화를 이루는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휴양처로 절찬을 받아온 대표적인 명승지이다. 


이러한 해운대와 오륙도를 연결하여 관광 유람선이 다니도록 하는 것은 해상관광지로 적극 개발하여 손색없는 관광의 보고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부산해상개발이다. 부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1978년 10월부터 해운대와 오륙도간 관광유람선 운항을 통하여 낭만과 해상의 절경, 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 해안의 기암괴석 등의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해운대 관광유람선은 송정, 미포, 동백섬에 선착장(동백 제 1·3·5·7호와 동백 제88·89호)을 두고 해운대 앞바다를 지나 동백섬을 돌아보고 남구의 절경인 이기대를 거쳐서 신선이 노닐었다는 신선대 비경과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를 일주하는 코스로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이다. 출발 장소는 해운대 미포 선착장이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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