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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문화학원| 용당동

동명문화학원 이미지

현재 남구 용당동에 들어서면, 동명목재가 아직도 살아 숨쉬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그 이유는 동명이라는 이름이 곳곳에서 선명하게 불거져 나와 있기 때문이다. 비록, 동명목재는 그 운명을 달리 했지만 용비산(龍飛山) 한 켠에 심었던 조그마한 소나무가 자라서 이젠 울창한 교육 문화의 숲을 이루고 있다. 동명문화학원은 23년 세월 동안 남구 용당동을 탈바꿈시켜 놓았다.

동명문화학원은 1976년 남구 용당동 505번지 일원의 51필지 총 47,309평의 지가 3억 1,743만 1,750원 합계 3억 7,431만 1,750원을 출연하여 그 설립 기반을 마련하였다. 고 동명 강석진 회장의 육영 이념으로 1977년 4월30일 학교 설립 계획을 승인 받아 그 해 12월 16일 기계ㆍ전자ㆍ전기ㆍ화공ㆍ건축 5개 학과 각 2학급씩 총 30학급의 학급 설립인가를 받았는데, 이 학교가 동원공업고등학교(현재, 항만물류고등학교)이다. 동명의 교육 문화에의 투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8년 5월25일 대학 설립 계획을 승인 받았고, 그 해 12월 18일에 6개학과 (기계과, 기계 설계과, 금속과, 조선과, 전기과, 공업화학과) 640명 모집을 문교부로부터 설립인가 받았다. 당시로선 우리나라에 초급 기술 양성을 위한 공고가 있었고, 고급 기술인을 양성하는 공과대학은 많았지만, 중견 기술인을 길러 내는 교육기관이 많지 않았던 상황이어서 동명 대학(구 동원공업전문대학)의 설립이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었다. 용비산(龍飛山) 능선 아래 동명불원 주위로 매우 안정감 있게 차근차근 설립되고 발전하던 동명문화학원이 위기를 당한 것은 1980년 5월이었다.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가 동명목재를 해체하는 가정에서 동명문화학원도 위기에 처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켜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현재는 기존의 두 학교의 괄목상대할 만한 발전 뿐 만 아니라 4년제 종합대학교인 동명정보대학교도 더불어 우뚝 섰다. 동명정보대학교는 1993년 12월28일자로 동명산업대학교 설립 계획이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고 1995년 7월28일 교명은 동명정보대학교로 변경 신청 그 해 12월 28일자로 정식 인가가 났다. 

  그리하여 1996년 3월 6일 3개 학부, 9개 학교, 840명(주520, 야320)의 신입생을 맞아 개교와 함께 동명문화학원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개교22주년을 맞는 동명정보공업고등학교에 이어 동명대학, 동명정보대학교를 포함한 동명문화학원이 걸어온 23년의 발자취는 남구 용당동을 교육의 도시로 거듭나게 했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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