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생이꾼| 감만동
얌생이꾼 ‘얌생이란 염소의 사투리 말이며 ’얌생이꾼‘1)은 ’상습적인 좀도둑‘을 가리키는 은어이다. 해방 후 감만동의 아래 강변에 있었던 일본군의 보급창고에 각처에서 모인 얌생이꾼들이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서 창고나 화차에 실려 있던 군수품을 닥치는 대로 몰이(훔치는 일)를 하였다. 이곳을 경비하는 미군이 순찰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훔쳐냈다. <얌생이 몰러간다>의 유래는 철조망 가에 사는 사람이 울 밖에 염소를 매어 놓았는데 줄이 느슨해진 철조망 안으로 염소가 들어가는 데서 비롯하였다. 염소 주인이 미군에게 철조망 안의 염소를 가리키면서 손짓 발짓을 하니 염소 주인을 알아보고 들여보내더라고 한다. 염소를 끌어오기 위해 들어가서 보니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부대 안에 산적해 있는 물품을 둘러보고 정문 쪽의 보초병이 보이지 않았다. 화물이 쌓여 있는 역 둘레의 야직장이나 미군부대의 철조망이 뚫린 철조망으로 염소를 도로 몰고 나오는 척 하면서 물건들을 슬쩍 훔쳐 나오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염소를 들여보내고 주인이 들어가는 염소몰이하는 것을 ’얌생이꾼‘이라 하였다. 미군이 진주하면서 시작된 염소몰이는 창고가 빌 때까지 이어졌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얌생이몰이의 주요 품목은 일본군의 군화라고 하였다. <핸조까>로 불린 이 군화는 소가죽으로 만들어졌는데 바닥에 압침만한 징이 박혀서 걸으면 저벅저벅 소리가 났다. 얌생이몰이가 한창일 때는 초등학교 4,5학년 학생들도 참가했다고 한다. 얌생이몰이가 확산되자 실업으로 놀던 젊은이들이 몰려 왔다. 두 세 명의 형제들이 조를 짜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많은 돈을 버는 경우도 많았으며 <새부자(富者) 난다>는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 그 당시 역전 부근에서 불리워지던 얌생이꾼들에 대한 노랫말도 있었다. 다 떨어진 지까다비 철사줄을 매고서 부산진 역두를 살살메는 얌생이꾼 화차 문을 열고 보니 밀가루가 세 포대 한 포대를 메고 보니 두 포대가 그리워2) 대중가요의 노래사말을 바꿔 노래로 부른 정도로 해방 후부터 6.25전쟁 후까지 유행하였으며 빈곤으로 살길을 찾던 귀향동포들과 피난민들에게 회자되었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야기이다. 1) 얌생이꾼 이야기와 보물발굴 사건의 이야기는 감만동민의 이야기가 아니고, 감만동에서 일어난 사건임. 2) 뿌리 깊은 나무에서 발행한 부산편 102쪽에서 발췌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